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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족, 김포족, 포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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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이규섭 시인
  • 19.11.29 09: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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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22



김치 담그려다 파김치 되기 일쑤다. 김장을 끝내고 나니 삭신이 쑤시고 결린다. 허리와 손목에 파스를 붙이며 “이젠 김장하지 말아야지”다짐한다. 지난해도 같은 말을 했지만 김장철이 돌아오면 또 팔을 걷어붙이게 된다. 수십 년 이어온 김장의 전통과 생활의 사이클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김장은 겨울철 반 양식이라는 고정관념을 허물기도 어렵다.
또 다른 이유는 핵심 재료인 배추와 무를 청정지역에서 무료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민통선마을에 사는 친척 집에서 우리 몫으로 재배한다. 새벽에 출발하여 밭에서 뽑아 트럭에 싣고 오면 오후 두세 시 넘는다. 이튿날 배추절임 작업도 녹록지 않다. 배추 겉옷을 벗겨낸 뒤 소금물에 절인다. 다음날 새벽 절임배추는 세 번을 헹궈 대형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뺀다. 중노동은 대부분 내 몫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아니라 “내 나이가 얼마인데 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채, 갓, 파, 마늘, 생강 등 부재료에 소금, 젓갈, 고춧가루로 간을 맞춰 버무리는 일도 고역이다.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결린다. 예전 시골에서는 땅을 파 김장독을 묻고 짚을 엮어 독 주위에 두른 뒤 움막을 지었으니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김장은 이웃들이 도와준다. 아내는 대접할 음식을 준비한다. 배추 속으로 싸서 먹을 돼지고기를 해마다 삶았으나 올해는 돼지감자탕으로 메뉴를 바꿨더니 호응이 좋다.
김치는 내리사랑이다. 자식에게 나눠주는 재미로 힘든 노동을 감수한다. “김치는 한국 엄마들에겐 어미와 자식을 잇는 빨간 탯줄 같다”는 육십 대 주부 이야기가 가슴에 탯줄처럼 와 감긴다. 사돈네 집에도 한 통 곁들여 보낸다. 김장 일손을 보탠 이웃 아주머니에게도 나눠 준다. 무김치를 좋아하는 질녀에겐 별도로 담궈 택배로 보냈다. 김장에 담긴 나눔의 발효다.
연례행사인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포장 김치 전문 회사가 3115명의 주부를 대상으로 ‘올해 김장 계획’설문 조사 결과 ‘김장한다’(45.1%)는 주부 보다 ‘김장 안 한다’(54.9%)는 주부가 절반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포족’은 2016년 47%에서 지난해는 56%까지 늘었다.
김장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 강도다. 58.7%가 육체적 스트레스를 든다. 가장 힘든 것은 김장 속을 버무리며 오래 앉아 있을 때(25.1%)와 배추절임과 무 썰기 등 재료 손질(23.7%)을 꼽았다. 통증은 허리, 손목, 어깨, 무릎 순으로 골병들었다고 호소한다. 주부 4명 가운데 1명은 김장 후유증으로 병원을 다녀왔다고 한다.
김장 채소 값이 치솟고 부 재료비도 만만찮아 김장을 포기하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주재료인 배추와 무를 공짜로 가져왔는데도 고춧가루 마늘 양념 등 부재료 값이 많이 들었다는 게 아내의 푸념이다. ‘김포족’ 가운데 ‘포장 김치를 이용하겠다’는 ‘포김족’은 응답자의 58%로 2016년 38%보다 20%나 늘었다. 한국 식문화의 오랜 정통인 김장도 인구가 줄고 서구식 식문화에 밀려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우리 집도 몇 년 안에 ‘김포족’으로 갈아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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