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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어서 봄의 행렬에 들어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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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권영상 작가
  • 20.03.26 09: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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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43



올겨울은 한강이 얼지 않을 정도로 추위가 덜했다.
비닐 한 장으로 만든 온상 안의 상추가 겨울 내내 얼지 않았다. 집 남향 텃밭에 지난 늦가을 온상을 만들었다. 가을 상추씨를 뿌렸는데 너무 늦었다. 초겨울쯤에야 간신히 싹이 트고 잎이 나왔다. 그걸 보자니 곧 닥쳐올 무서리가 걱정이었다. 모르는 척하고 말기에는 내 실수가 컸다. 어린 모종 서른 개를 남향 텃밭에 옮겨 심고 비닐로 작은 온상을 만들었다.
살아날 운이었는지 상추는 다행히 덜 추운 겨울을 났다.
온상이라 해봐야 열량이 높은 거름을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매양 들여다보며 보온 막을 쳐주었다 벗겨주었다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거기다 그냥 심어두고 서울에 올라와 겨울의 절반을 살았으니 상추가 살아난 건 순전히 저들의 운 때문이다.
드디어 3월이 왔다. 옹크리던 상추들이 기지개를 편다. 봄볕에 제법 상추 꼴을 갖춘다. 물 조리개 가득 물을 주는 내 손에 힘이 난다. 올겨울은 정말이지 코로나네 뭐네 하며 사람을 잔뜩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런 탓일까. 파랗게 커 오르는 온상 안의 상추를 보려니 아, 이렇게 살아나는구나! 하는 겨울을 건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난날, 답답한 마음에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갔다. 거기 야외 꽃밭에 파랗게 돋는 새순들을 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행여 출입문 손잡이를 잡을 때 음험한 자국이 남아있을까봐 걱정하며 걸어 들어간 거기에서 뜻밖에 푸른 봄빛을 만났다. 흙을 헤치고 나오는 새순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튤립이었다.
이 현대식 빌딩과 LED 광고판이 번쩍이는 그 아래 대리석 벽으로 둘러싸인 꽃밭 안에서 용케 튤립은 겨울을 났다. 나는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사람처럼 그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그들은 마치 설원을 걸어온 모험가들 같았다.
아, 봄이구나!
나도 모르게 환호했다.
그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안성 집 밭머리에 겨울 내내 덮어둔 낙엽을 긁어내주는 일이었다. 나는 코엑스의 봄을 생각하며 안성으로 내려왔다. 창고에서 갈퀴를 꺼내어 낙엽을 긁다가 손을 멈추었다. 마늘 순처럼 파랗게 돋은 새순들이 내 눈을 붙잡았다. 이게 뭘꼬, 생각하려니 그게 글라디올러스였다. 구근이 얼까봐 전엔 캐어다가 겨울 동안 보관했는데, 지난해엔 추위에 강한 본성을 알고 노지에 그냥 두었다.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겨울을 흔들며 벌써 그렇게 컸다. 서울의 안쪽 코엑스의 봄과 서울서 멀리 떨어진 이 시골마을 봄의 시간이 놀랍게도 닮았다. 자세히 보니 그만이 아니다. 참나리며 작약도 뾰족하니 움이 돋았다.
갈퀴질에 드러나는 게 또 있었다.
당귀와 머위다. 종로 5가역 근방에서 구한 머위 뿌리 한 주먹을 심었는데 그게 당귀와 함께 푸석푸석한 밭흙을 헤치고 돋아난다. 고향 집 우물가엔 머위가 있었다. 이때쯤이면 제비꽃과 민들레와 함께 별모양의 새잎을 피운다. 날이 따뜻해지면 꽃대를 밀어올려 피우는 꽃이 좋아 굳이 머위를 심었다. 실궂한 당귀 순도 땅을 치밀어 오른다. 땅에 납작 엎디어 당귀 잎에 코를 대어본다. 당귀 특유의 한약냄새가 화아하다.
봄은 봄이다. 내일쯤 마른 낙엽을 태우고 텃밭을 갈아엎어야겠다. 형수님께서 보내주신 감자씨 눈을 따 얼른 심고 나도 봄의 행렬에 성큼 들어서야겠다. 언제까지 코로나에 짓눌려 웅크리고 살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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