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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체통 안의 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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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권영상 작가
  • 20.05.21 09: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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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36



뜰 안에 나무가 여럿 있다. 그런 까닭에 새들 왕래가 잦다. 주로 박새 아니면 곤줄박이다. 마을을 지나가는 김에 잠깐 들러 노래 한번 불러보고, 그러다 별일 없으면 떠나곤 한다. 아무 연고도 없는 우리 집을 찾아와 저만치 오는 봄을 알려주기도 하고, 집안의 고적감을 깨뜨려주거나 집을 비우면 빈 집을 보아주기도 한다. 그런 일들이란 실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건지 그들이 오고 가는 것을 모를 정도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우체통을 세운 나무 기둥이 흔들거려 돌조각으로 여기저기 틈을 찾아 박아주고 일어설 때다. 저쯤 배롱나무에 앉은 곤줄박이가 내 눈에 띄었다. 그의 행동거지가 이상했다. 오면 오고 가면 가는가 보다 하던 그런 무심한 모습이 아니었다. 왠지 내 눈에 어색해 보였다. 마치 나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아니 저게 왜 저러는 거지?’
그 일이 있고, 점심을 먹을 때 아내가 입을 열었다.
“우체통 앞에 뭔가 한 자 써 붙여야겠어요.” 했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게 아내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우체통에 새가 둥지 틀어 새끼를 쳤다는 거다. 참 예민한 게 여자의 눈이다. 엊그제 안성에 내려온 아내가 단박에 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곤줄박이의 비밀을 눈치챘다. 그제야 나는 아! 하고 때늦은 탄성을 질렀다. 곤줄박이의 그 안절부절못하던 바장거림이 우체통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가 보니 그제야 내 눈에 곤줄박이가 다시 보였다. 우체통을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그의 부리에 벌레가 잔뜩 물려있었다. 어제도 그러고 그끄제도 그랬을 텐데 나는 그걸 모르고 우체통을 바로 세우느라 소란을 피웠다.
그래도 호기심이 있어 슬쩍 우체통을 지나치며 보니 우편배달부가 언제 왔다 갔는지 편지 한 통이 꽂혀있다. 새끼 치는데 방해가 될까 봐 얼른 뽑으며 그 안을 들여다봤다. 이게 웬일인가. 이미 다 커버린 새끼 새 네 마리가 비좁은 둥지에서 크고 있었다. 비밀을 훔쳐본 것처럼 가슴이 쿵쿵거렸다.
나는 편지를 따로 받을 간이 우체통을 만들기 위해 서둘렀다. 자며 연필이며 톱을 가지러 방에 들어와 공구함을 뒤질 때다. 창밖으로 뭔가 휙 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가만히 내다보니 이제 꽃이 한창 피는 작약 그늘에서 뭔가가 꼼틀거렸다. 새였다. 새끼 새. 한눈에 보아도 알만한 곤줄박이 새끼였다. 우체통에서 날아나온 게 틀림없었다.
새끼 새는 서두르는 빛이 역력했다. 데크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이내 데크 난간에 날아올랐다. 어, 어, 어하는 사이 하얀 방울 똥 하나를 싸고는 뜰을 건너 모과나무 사이로 난 들녘으로 날아갔다. 뜰 안을 내다보니 새끼 새 세 마리가 마당에 날아나왔다. 배롱나무 가지에 앉은 어미 새가 다급하게 재촉했다. 하늘을 향해 날아보렴! 얼른! 그러는 것 같았다.
내가 우체통 문을 열어본 게 화근인 듯싶었다. 위험을 느낀 어미 새가 새끼들을 우체통 밖으로 불러내는 것 같았다. 콩콩 뛰던 새끼들이 드디어 포르르 포르르 뜰 밖으로 날아갔다. 그러고 보니 5월도 벌써 하순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해에도 창가 으름덩굴에 오목눈이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쳤었다. 창문 열 일이 있어도 열지 못하고, 크게 할 말이 있어도 숨죽여 말하며 살았지만 그게 불편이기보다 오히려 설레는 행복이었다. 곤줄박이 역시 그랬다. 그들을 날려 보내 허전하긴 해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뜰 안에서 곤줄박이와 봄꿈을 함께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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